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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선열들 누운 곳도 몰라서야

한국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LA지역 독립유공자 상당수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본지는 지난달 28일, 3일자로 LA인근 묘지에 방치된 독립유공자 묘소 실태를 집중 보도했다.   한인역사박물관 민병용 관장에 따르면 한국 보훈부가 발표한 미주 지역 독립유공자는 436명이다. 이 가운데 남가주 지역에 안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선열 160여 명 가운데 실제 묘지가 확인된 분은 60여 명에 불과하다. 조국이 독립유공자로 선정했지만 누운 곳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선열이 100여 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이유는 묘소 소재지를 알고 있는 유공자들의 후손을 찾기가 어렵고,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단체도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면밀한 실태 조사와 재정 지원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보훈부가 미주지역에 직접 나와 조사한 것은 7년 전인 지난 2018년이 마지막이다. 재정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독립유공자 묘지를 참배하고 관리하는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지원금은 연간 4만5000달러가 전부다. 매달 3750달러꼴인데 렌트비와 관리비를 내기도 빠듯하다.   지난해 8월 출간된 ‘대한인국민회 100년사(민병용 지음)’에 따르면 미주 한인사회는 조국 광복사업을 위해 40년간 약 300만 달러를 지원했다. 1919년 한해 동안에만 하와이 한인들이 3만5034달러를 냈다. 현재 가치로는 65만 달러의 거액이다.   또 1941년부터 1945년까지 4년간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4만6000달러를 보냈다. 지금의 82만 달러와 맞먹는 금액이다. 당시 한인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10시간, 26일 일하고 월급 18달러를 받았다. 그 어려운 살림에 ‘21례금’이라고 해서 개인 소득의 20분의 1을 기부했다. 그 애국심의 흔적을 찾고 보존하기 위한 정부 지원금이 4만5000 달러라니 납득하기 어렵다.   추가 재정 확보를 위해 대한인국민회도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2021년 1월 한국 정부는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국내외 산재한 유공자 묘지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약속한 바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묘지 벌초 및 관리 비용으로 1기당 20만 원, 훼손 묘지 비석 단장은 1기당 25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묘지 관리는 대한인국민회에만 맡기기 어렵다. 이사진의 고령화로 2세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한인 비영리단체들이 팔 걷고 나선다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청소년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3.1절이나 광복절 등 기념일마다 묘역 참배와 청소를 맡긴다면 뿌리 교육을 겸한 봉사활동이 될 수 있다.   애국 선열의 묘역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나침반이다. 다시는 나라를 잃는 아픔을 겪지 않겠다는 다짐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와 한인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때다. 사설 선열 la지역 독립유공자 독립유공자 묘지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

2025-03-05

[기고] 한인 관심 저조한 파차파 캠프 전시회

 지난 10월 16일부터 리버사이드 다운타운에 위치한 UC리버사이드 아트센터(컬버센터)에서 파차파 캠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1904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리버사이드로 이주한 도산 안창호가 세운 미국 최초, 그리고 당시 최대 규모의 한인 공동체인 파차파 캠프의 역사적 의미를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시회를 기획할 때만 해도 주류 언론이 크게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전시회를 주류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LA타임스, NBC 뉴스 등이 이미 보도를 했고 오렌지카운티레지스터와 PBS방송은 취재를 마쳐 곧 보도할 예정이다.     필자는 PBS와 무려 5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는데 파차파 캠프에 대한 주류 언론의 관심이 높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리버사이드 관계자들은 시가 전국적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자 매우 흡족해 하고 있다. 시 당국은 도산 안창호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에 무상으로 땅을 기부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리버사이드 시가 전국적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은 아마 최근 들어서는 처음일 것이다.     이렇듯 미국 주류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파차파 캠프 전시회에 한인사회의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한인언론들이 보도하지 않았고 방문 취재를 하는 매체도 거의 없다.     한인사회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인 파차파 캠프에 관한 이번 전시회는 차세대 정체성 교육에도 활용될 수 있다. 또한 도산 안창호의 업적을 재조명할 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 이민역사를 보완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파차파 캠프에서는 1911년 11월 23일부터 12월 4일까지 개최된 제3차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를 통해 21개 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은 삼권분립에 근거해 중앙총회 즉 무형정부를 세웠고, 대의회 즉 법안을 만드는 의회를 설립해 대의원 제도를 확립했으며, 자치 규정을 만들어 법 제도를 확립하면서 민주공화제를 제도화했다.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제3차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에는 8개 지방회 회장이 모두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1907년부터 한국으로 돌아가 신민회 활동을 하다가 1911년 9월 뉴욕항에 재 입국 후 가족이 있는 리버사이드로 돌아온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자 8개 지방회 회장이 모두 참석한 것이다. 신한민보는 1911년 파차파 캠프에서 개최됐던 총회에 지방회 회장이 모두 참석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대부분의 지방회 회장은 직접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인을 참석시켰다.     필자는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짧은 기간에 민주공화제를 선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1911년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에서 개최됐던 제3차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 21개 결의안이 있었기 때문으로 확신한다.     즉 대한민국 민주공화제의 초석을 다진 곳이 바로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인 것이다. 파차파 캠프는 단순히 노동자 캠프가 아닌 초기 미주 한인사회 독립운동의 중심이었으며 이후 대한민국 민주공화제 확립을 가능케 한 ‘도산 공화국’이었다.   파차파 캠프 전시회는 2022년 1월 9일까지 컬버센터(Culver Center, 3834 Main St. Riverside)에서 목·금은 정오~오후 5시, 토·일은 오전 11시~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파차파 캠프 전시회에 많은 한인들이 방문해 초창기 이민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부탁드린다. 장태한 / UC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기고 전시회 한인 캠프 전시회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 노동자 캠프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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